[OC] 이승만 전 대통령 경호원 박용균씨의 '영원한 각하' <3>
대통령 경호에 구멍이 뚫린 적도 있었다. 이 전 대통령이 경무대 인근 산책을 나가면 경무대 외곽 4개 초소 병력이 효자동 일대 거리의 일반인 출입을 통제했다. "어느 날 각하가 산책을 하시는데 신문배달 소년 하나가 통제선 안으로 들어간 거야. 큰 일이 난 거지. 각하께서 '넌 누구냐'고 하시는 데 아차 싶더라고. 각하께서 소년을 불러 이것저것 물어 보셨는데 사정이 참 딱한 거야. 부친이 병들어 신문을 돌리며 고학하는 불쌍한 아이였지." 아이를 돌려 보낸 이 대통령은 박용균(사진) 수행원에게 "저 아이 집에 가 보라"고 지시했다. "산 꼭대기 달동네에 사는 데 가 보니 참 기가 막혀. 우리도 다 못 살았지만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거야. 아버지는 이불 깔고 누워 있고 다 허물어져 가는 손바닥 만한 방에서…." 당시를 회상하던 박씨의 목소리가 갑자기 갈라지더니 이내 눈자위까지 붉어진다. "나도 마음이 너무 안 돼 돌아오자 마자 보고를 드렸지. 그랬더니 그 자리에서 문교부 장관을 부르시더니 '이 아이가 대학을 나올 때 까지 학비를 모두 면제시켜 줘라'고 하시는 거야." 이 전 대통령이 하와이로 떠난 뒤 경무대를 나온 박씨는 미 8군내 728 경찰파견대에 근무하다 미 8군 체육관 유도 사범이 됐다. 이후 미 부산기지사령부에서도 유도를 가르친 박씨는 1979년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. 박씨는 LA재미유도회관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 세탁소를 경영했다. 유도 9단인 박씨는 지금도 하루 3시간 이상 운동을 할 정도로 건강하다. 그는 꾸준한 운동 덕분에 췌장암을 극복했다고 믿는다. 박씨는 2003년 췌장암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. 췌장암은 예후가 좋지 않아 암 중에서도 특히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진다. 이런 췌장암도 박씨는 쉽게 극복했다. "운이 좋았어. 늦지 않게 발견해 수술했거든. 아마 꾸준히 운동을 하지 않았으면 벌써 저 세상으로 갔을 걸." 대통령 경호원 출신답게 날카로운 박씨의 눈매는 이 전 대통령과의 추억을 말할 때 마다 누그러지곤 했다. 인터뷰 내내 이 전 대통령을 '각하'라 부른 박씨는 자유당 말기의 정치적 난맥상에 대해 "각하보다는 주위에서 보필한 이들이 문제였다"고 말했다. 대한민국 건국 주역으로 4선 대통령을 지냈지만 이역만리에서 쓸쓸히 눈을 감은 이승만 전 대통령. 세인들의 평가와 관계없이 그는 박씨에겐 '영원한 각하'일 뿐이었다. 임상환 기자 limsh@koreadaily.com